
주요 정보
- 해당 상품은 청각 장애인 및 장애인을 동반한 비장애인을 위한 특화 상품이며,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해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해당 상품은 모집 인원별(4인, 10인, 20인)로 1인당 가격이 표시되며, 인원에 따라 금액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상품 결제 후 출발 인원 미충원 등의 사유로 여행이 취소/환불될 수 있습니다.
- 기존 일정 외 추가 선택관광 입장료, 포함된 식사 외 개인 간식 등의 경비는 현장 별도 결제로 이루어집니다.
- 제시된 옵션사항 외의 추가 요청사항이 있을 시, 구매 전에 별도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함 사항
- 전 일정 식사
- 인솔자 경비
- 1억원 여행자 보험
- 관광지 입장료
불포함 사항
- 기타 개인 경비
예약 시 필요 사항
- 출발 2주 전까지 상품가의 30% 입금 시 예약이 확정됩니다.
취소 환불 규정
- 출발 5일 전 취소 시 전액 환불
- 출발 2일 전 취소 시 90% 환불
- 출발 1일 전 취소 시 80% 환불
- 당일 취소 시 70% 환불
※모객 현황에 따라 상품 금액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정동길
덕수궁 대한문에서 신문로까지 이어지는 1㎞의 길은 구한말 한양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貞陵)이 자리하여 ‘정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19세기 후반 개화기를 맞아
서구열강의 공사관이 당시의 대표적 무역항이었던 마포와 궁궐에서 가까운 이곳에 들어서면서 서구식 교육기관과
종교건물이 집중되는 근대문물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동교회
정동 교회는 개신교가 이 땅에 보급된 후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이다. 1885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는 우리 나라에 입국하여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의 근대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예배만을 위한 건물을 구입하여 베델(Bethel) 예배당이라 하고 1887년 첫 예배를 시작하였다.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건립이 필요하게 되자 18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897년 12월 26일 봉헌식을 가졌다.
이 건물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19세기 교회 건물이다.
(구)러시아공사관
러시아공사관은 조선말 한로수호조약이 비준된 1885년 직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되었다. 르네상스식의 우아한 2층 벽돌집으로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e)이 설계하였다고 한다.
공사관이 건립된 일대는 연산군이 도성 밖으로 놀러가기 편리하도록 설치한 3개의 마장 중 하나였다. 고종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의 영사관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을
덕수궁이 인접한 곳에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 공사관은 아관(俄館)이라 불리는데, 우리에게는 고종의 아관파천 사건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일본군에 시해를 당한 후 친일내각에 들어서자 경복궁에 유폐된 상태에 놓여 있던 고종을 친러파의 범진 등과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896년 2월 1일 세자와 함께 아관으로 옮겨오게 하였다. 그 결과 친일 김홍집내각을 무너뜨리고
친로 박정양내각을 조직하는 등의 국정을 처결하다가 다음해 2월 20일 경운궁으로 환궁하였던 일련의 과정을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숭정문
숭정문은 경희궁의 본당으로 임금은 많은 아침 회의 및 식을 개최 하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중요한 외국인 방문객과 관계자들을 위해
연회 및 리셉션에 사용되었으며, 경희궁 성정문 입구의 주요 입구이다. 높은 기단을 쌓아 월대를 만들었고, 왕궁으로서의 위엄을 가지고 있다.
성정문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봉황 조각상으로 왕궁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돌 계단의 양쪽에는 왕궁을 지키는 서수(瑞 獸)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경종(景宗)과 정조(正祖), 헌종(憲宗)이 숭정문을 지나 숭정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일제강점기동안
경희궁이 훼손되면서 숭정전은 헐려 현 동국대학교로 매각되어 옮겨졌으며 정각원(正覺院)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다른 궁궐의 정문에 비해 그 규모와 격식 면에서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했다. 또한 광화문은 담장 끝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어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경복궁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종묘, 성곽과 사대문,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는데
1394년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완성한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왕자의 난 등이 일어나면서 다시 개경으로 천도하는 등 조선 초기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경복궁은 궁궐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정치 상황이 안정되고 비로소 이곳이 조선 왕조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게 된다.
청계광장 & 청계천
정조의 화성 행궁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도자벽화로 재현한 정조 반차도가 제3경, 패션분수와 벽화작품을 볼 수 있는 패션광장이 제4경,
옛날 아낙네들이 빨래하던 자리를 꾸며 놓은 청계천 빨래터가 제5경이다. 서울 시민 2만 명이 직접 쓰고 그린 타일로 꾸며 놓은 소망의 벽이 제6경,
철거된 청계고가도로의 교각 세 개를 기념으로 남겨 놓은 존치교각과 터널 분수가 제7경이다. 청계천 복원 구간 제일 끝의 버들습지가 제8경으로
수생식물을 심어 놓은 자연생태 공간이다. 답답하고 오염된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으로 서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할 명소다.
“1Day 서울 일일 투어 정동길~경희궁 코스”의 첫 상품평을 남겨주세요